다꾸다꾸 이야기

11월 25일 뜨끈한 국물과 김밥

레드집사 2023. 11. 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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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날 있잖아요? 오늘따라 왠지, 왠지 김밥을 만들어 먹고 싶은 날. 내가 김밥을 잘 만들지 않는 이유는, 재료 손 많이 가서?  아니죠! 내겐 김밥을 잘 만다는 것이 30년의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때문에 만들 엄두가 않났던 건데 말이죠. 그런 김밥이 오늘 너무너무 만들고 먹고 싶더랍니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한 김밥재료
왜 김밥이 30년의 숙제가 되었는가?

   21살, 지금으로는 넘나 어렸던 하지만 열정이 넘쳤던 때였습니다. 당시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기가막히게 잘추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기타도 잘치고, 노래도 잘하고, 공부는? ...하지만 친절하고 그러면서 왠지 어둡고. 비를 좋아하고. 고백 못하고 좋아하던 그 친구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주변 다른 친구들과 짜고 놀러가기로 하고는 깜작 이벤트로,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김밥을 만들었죠.
   90년대가 배경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적이 있죠? 3단 찬합. 거기에 과일 한 칸, 김밥과 튀김돈까스로 두 칸을 꽉꽉 채워 넣었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행위가 곧 30년의 트라우마를 낳을줄도 모르고 기대에 부풀어서.
   설레고 즐거웠던 그 날, 많이 걸어 배고팠던 우리를, 배꼽빠지게 웃게해서 더 배고프게 했던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될줄이야. 야심차게 내놓을 때 들었던 감탄과 함성이 김밥을 집어 드는 족족이 도로로로 풀려서 거꾸로 물음표 모양이 되면서 웃음 바다로. U.U;;;; 아...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란게 이럴때 쓰는 거구나를 알았던 날이 되었습니다.
   30년이 갈 트라우마를 안고 별 소득이 없이,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의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죠.. 엄마도 출근하고 다 나가고 없는 집. 새벽부터 덜그럭 시끄럽고, 뜨겁고, 땀나게 열고 닫아 지저분해진 냉장고며 식자재들의 껍질들이 주방에 남아 나의 부끄러웁고 상실감을 더했던 기억.
  이렇게 꺼내어 나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내 젊은 추억의 한 조각이기도합니다.

동생의 새 압력솥 장만기념 닭백숙 (닭16호)ㅋ

우연히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백숙해 먹자고. 아이와 함께 큰 닭 한마리 사고 김밥을 싸서 건너갔죠. 요즘 뜨끈~한 국물이 많이 생각나는 만큼 모든게 딱딱 맞아떨어졌죠. 30년전 찬합의 주인이었던 엄마와 내게서 김밥의 김도 못 받아본 동생들과 나의 김밥에대한 신뢰가 없는 아이들이 식탁에 둘러 앉아 아주 맛있게 나의 김밥을 먹습니다. 그 때랑 비교할 수 없을만큼, 지금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즐겁겁고 행복한 이 소중한 시간을 제게 허락해주셔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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